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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20. SkD 틸레만 라인골트 (산토리홀)
    공연 후기 2017. 3. 1. 22:12

     길고 긴 E-flat의 라인 강바닥에서부터 위엄에 넘치는 발할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관현악은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냈으나 가수를 앞서가는 법이 없었고, 가수들은 음성은 물론이고 연기에도 말 그대로 혼신을 다하였다. 핵심을 간추린 요약적인 연출은 음악에 몰입한 관객의 집중력을 전혀 흩뜨리지 않고 오히려 음악에 집중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2시간이 넘는 이 전야제에 흠뻑 빠진 관객들의 환호는 무려 20분간의 커튼콜을 이끌어냈다.

     

     이 날의 연출은 기본적으로 대본 자체의 내용을 상징과 최소한의 무대장치를 통해 굉장히 요약적으로 전달했다병풍 형태의 일본풍 풍경화를 중심으로 왼쪽에서는 인간, 오른쪽에서는 신들이 등장했는데. 니벨하임의 알베리히는 불빛이 거의 닿지 않는 제일 구석(1장에서는 왼쪽, 그 이후로는 오른쪽)에서만 출입했다제일 인상적이었던 점은 아래 사진과 같이 (동양식의) 미닫이문으로 황금을 표현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라인 3처녀와 알베리히가 등장하는 1장에서는 무대 왼쪽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됐는데, 아래 사진의 오른편과 같은 황금빛 판이 무대 왼편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패널 위에서 라인 3처녀가 황금을 노래하고, 황금판 바로 옆 구석에서 등장한 알베리히는 게걸스럽게 라인 처녀들과 황금을 갈구했다. 황금을 빼앗은 알베리히는 자신이 등장했던 무대 구석으로 사라지는데그와 동시에 다른 판으로 황금판을 가려버렸다. 이후 이와 비슷하게 보탄과 로게가 알베리히의 황금을 탈취하는 장면, 프라이아와 황금의 교환 장면에서도 양쪽의 미닫이문 장치를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간결하고 명확한 효과를 거두었다. 이 전야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위엄 넘치는 발할 입성 장면에서는 조명으로 홀 뒤편에 자리한 파이프 오르간을 비추어 음악에 걸맞은 장대함과 위엄을 유감없이 표현해냈다.

     소품의 활용도 고전적 연출이라는 맥락에 알맞게 대본의 지시를 거의 거스르지 않았다. 분란을 가로막고자 보탄이 종종 창을 인물들 사이에 내리꽂거나, 프라이아의 사과를 먹지 못하자 기가 빨린 돈너가 망치를 쿵 소리 내며 손에서 떨어트리는 등 특이한 점은 없었다. 황금투구 타른헬름의 경우는 셰로의 바이로이트 연출에서처럼 쇠그물을 이용했다. 알베리히의 변신장면은 다소 코믹하기까지 했는데, 알베리히가 타른헬름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면서 무대 뒤편으로 들어가자 무대 위쪽에 펠트지로 만든 용 모양의 그림을 들어 올리고 커다란 두꺼비 인형(둘 모두 꽤나 귀여운)을 던져놓았다. 악단원들도 무대 위를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따라 웃을 정도.


     성악가들의 역량은 소리에서나 연기에서나 신들린 듯이 모두 다 표현력이 엄청났는데, 그 중 제일은 로게를 맡은 Kurt Streit라고 생각한다. 등장 이후로 극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역할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려냈고, 그에 걸맞은 다채로운 목소리 변화와 끝까지 지치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며 무대를 장악한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Immer ist Undank Loges Lohn!'에서 관현악의 치밀하고 탐미적인 연주와 함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했던 순간은 특히 잊을 수 없다보탄의 Michael Volle 역시 두꺼운 소리와 넓고 느린 비브라토를 기본으로 위엄어린 목소리를 들려줬으며프리카의 Mihoko Fujimura도 마찬가지로 우아함으로 귀족성을 뽐내며 다른 역할들과 수준을 구별 짓기도 했다. 보탄과 프리카의 노래에서 대사 끝 음절이 프레이즈의 최고음일 때 음을 살짝 밀어 올리듯 sotto voce로 노래하는 순간은 최면에 가까울 정도. 미메의 Gerhard Siegel 등장과 함께 불안에 가득찬 목소리와 고통스러운 비명만으로도 공포감을 탁월하게 조성하였고 공포와 불안에 가득한 시선처리까지 압권이었다알베리히의 Albert Dohmen(근래의 소문과 다르게딕션 전달이 아주 뛰어났고, 탐욕 그 자체에 찌든 역할로 머물지 않고 때에 따라 일면 위엄에 찬 모습도 드러내기도 했다두 거인 파졸트와 파프너(Stephen Milling, Ain Anger)는 등장부터 여유에 찬 자신만만한 음성을 들려주었다. 에르다의 Christa Mayer 음성 자체는 아주 뛰어났으나 무대에 펼쳐진 혼란을 불식시키는 신비스러움과 위엄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웠다. 에르다가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하여 보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보탄을 설득했는데, 음악적으로나 연출로나 2014년 서울시향의 동곡 연주의 에르다(합창석 출입문에서 신비로운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와 대비되는 모습이기도 하였다. 라인 3처녀는 각자의 역할도 뛰어났지만 중창에서의 빈틈없는 일체감은 정말 대단했으며, 발할 입성 장면 때 무대 뒤에서 애처로운 3중창이 울려 퍼질 때에도 그 일체감은 빛을 발했다(비록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반지와 타른헬름을 쥐고 있는 알베리히에르다와 보탄


     틸레만과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의 연주는 이 모든 것의 화룡정점이었다. 이 악단의 재밌는 점은 악단의 소리가 아무리 커도 성악가들의 소리를 먹어버리지 않고 무대 아래에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가수들의 소리를 받쳐준다는 것이었다. 무대 안에서 각 악기군마다 하나의 묵직한 앙상블을 만들어내서 무대 밖으로 그 질감을 내보내는데, 이런 점이 그런 영향(또는 인상)을 준 것일지도. 특히 이어진 이틀간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도 느낀 것처럼, 이 사운드의 근간은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호른과 콘트라베이스에 있는 것 같았다. 틸레만은 이 길고 긴 단막 오페라의 큰 흐름을 만들어 가면서도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는 법이 없었는데, 하나의 예를 들자면 프리카가 보탄에게 황금을 얻도록 유혹(내지 설득)하는 장면에서 현악의 트레몰로는 조명이 달라지기라도 한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관현악의 거대한 투티에서도 모든 악기들의 앙상블을 조절하여 튀지 않는 윤기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정교하지만 거대한 음악 만들기는 음악의 흐름 속에서 불분명해질 수 있는 음악의 초점을 명확하게 잡아주었다.



    출연진

    Christian Thielemann, DIRIGENT
    Michael Volle, WOTAN
    Alejandro Marco-Buhrmester, DONNER
    Tansel Akzeybek, FROH
    Kurt Streit, LOGE
    Albert Dohmen, ALBERICH
    Gerhard Siegel, MIME
    Stephen Milling, FASOLT
    Ain Anger, FAFNER
    Mihoko Fujimura, FRICKA
    Regine Hangler, FREIA
    Christa Mayer, ERDA
    Christiane Kohl, WOGLINDE
    Sabrina Kögel, WELLGUNDE
    Simone Schröder, FLOSSHI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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