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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3.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후기 2017. 6. 25. 02:10

    R. Schumann - Konzert für Violoncello und Orchester in a-moll op. 129*     (Zugabe) M. Rostropowitsch - Moderato für Violoncello Solo* A. Bruckner - Symphonie Nr. 7 in E-dur WAB 107 (Edition: L. Nowak) Alban Gerhardt, Violoncello*  Markus Stenz, Dirigent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마르쿠스 슈텐츠가
     수석객원지휘자로서 서울시향을 지휘한 두 번째 연주. 성공 그 이상인 연주였다. 개성이 확실한 협연자와 함께 한 1부 협주곡(당초 계획은 진은숙의 첼로협주곡이었다) 반주는 관현악이 이 정도로 협연자와 밀착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못 했던 수준이었고, 협연자는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2부의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는 활기와 서정을 직접적으로 불어넣어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바꾸어 놓았다.


      알반 게르하르트와 함께 지휘봉 없이 무대로 나온 슈텐츠는 목관의 세 화음을 심플하게 연주하며 곡을 열었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좋은 소리로 긴 프레이즈를 노래해야 하는 부담이 굉장한 곡이라서 처음엔 그만의 생소리가 더욱 날것으로 들리긴 했다. 하지만 관현악의 한차례 총주가 지나고 난 다음부터는 곡을 완전히 장악한 채 갑작스러운 악상 변화와 불편한 도약들을 전부 멋지게 성공시키며 협연자 자신의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가 윤택한 소리와 함께 굉장히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테크닉은 표현을 위한 수단이라는 금언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템포의 변화도 다양하고 급작스러웠다. 게르하르트는 프레이즈의 중요한 음, 혹은 메인 테마를 향해서 템포를 잡아당기는 걸 마다하지 않았는데, 노래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확실히 구분하는 거시적인 시각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이러한 미명 하에 디테일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협연자 이상으로 놀랐던 점은 
    관현악이 협연자의 아이디어에 맞춰 재빠르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특히 슈만의 협주곡들의 필수 덕목인 독주와 관현악의 조화와 상호 협력이 이 정도로 긴밀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수준이었다. 독주자의 호흡과 템포조절을 그대로 보조를 맞춰주는 지휘자와 악단의 역량은 2부의 놀라운 연주와 함께 회자되어야만 할 것이다. 슈텐츠의 지휘는 역시 곳곳에 숨어있는 아이디어를 드러내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작곡가가 숨겨놓은 단편적인 악구들을 음악의 큰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그것들을 살짝만 암시하는 미덕이 빛을 발했다. 한편 독주 첼로가 악단 수석 첼리스트와 이중주를 해야 하는 2악장은 주연과 조연이 아닌 서로 대등한 음량으로 함께 노래하며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브루크너 오프닝'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어깨 현악기들의
    트레몰로와 저음의 주제 제시만으로도 이 날 연주의 특징을 반 이상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간을 감싸는한 은은한 트레몰로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전 악장에 걸쳐 트레몰로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표현한 것만으로도 꽤나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본토 악단의 브루크너를 아직 실제로 접해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잔잔한 일렁임부터 햇빛이 어지럽게 내리쬐는듯한 찬란함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어떻게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지. 슈텐츠는 시작부터 첼로와 베이스의 폭넓은 도약과 선율을 적극적으로 연주하길 주문했다. 저음군에 대한 이러한 지시는 연주 내내 이어졌고, 관현악이 총주로 공세를 퍼부을 때 이 악기들의 묵직한 존재감은 음향의 확실한 지지대 역할을 하였다. 시작의 첼로와 유니즌으로 도약하는 호른의 말끔한 소리가 예고했다시피 상황에 따라 캐릭터를 바꿔가면서 악단을 감싸거나 독자적인 그들만의 임팩트 있는 앙상블을 이루었다. 슈텐츠가 바그너 로엔그린 3막 전주곡으로 서울시향과 첫 만남을 가졌을 때 들었던 금관의 일체된 앙상블을 생각하며 금관군의 소위 '오르간 사운드'를 기대했지만, 편성이 증폭된 탓인지 그 개인적인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않았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다이나믹 낙폭을 자랑하는 동시에 그 호흡 안에 건조한 엄숙주의 대신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앞선 악장과 내용 측면에서 확연히 비교되며 자칫 군더더기처럼 느껴져 피로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3, 4악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많은 지휘자들에게 고민을 안겨준다. 과거의 소위 '거장형 지휘자'들처럼 장송곡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엄격한 표정으로 연주하기엔 보통 집중력이 아니면 앞선 악장에 주눅들기 십상이다. 이 영민한 지휘자는 템포를 바짝 올려 긴장감을 돋우고 그 템포에서도 묵직한 소리를 주저하지 않았다. 스케르초의 피아니시모가 장송곡의 봉인에서 풀려나는 순간이다! 3악장부터 유독 두드러진 팀파니의 활약은 감상자를 독려해주며 음악의 집중력을 마지막까지 유지시켰다. 이따금 사소한 디테일의 불일치가 있긴 했지만 이러한 다이나믹과 함께 연소되었다. 악절 간의 템포 변화의 폭도 굉장히 넓었다. 텍스트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이런 적극성까지, 그의 브루크너는 서정성을 담아낸 지극히 인간적인 브루크너에 가까웠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표현력은 견고한 음향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전달 될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 날의 연주를 곱씹으면서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영광처럼 회자되는 시향의 연주들과 같이 이 연주 또한 그러한 수준에 충분히 견줄만한 연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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